디지털 장의사 vs. 프로필 세탁 서비스: 본질적 차이와 오해 바로잡기
1. 디지털 장의사, 삶의 흔적을 정리하는 사람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죽은 사람의 SNS 계정, 이메일, 클라우드 사진, 유튜브 채널, 구독 서비스 등을
유족의 요청에 따라 정리하고 삭제하거나,
필요한 데이터를 남겨두는 일을 하는 전문가다.
하지만 실제 업무 영역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섬세하다.
죽음 이후의 디지털 흔적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직업은 단순한 기술자나 계정 정리 대행업자가 아닌,
감정과 기억을 다루는 정리자에 더 가깝다.
최근에는 이와 유사한 형태의 서비스들이 늘고 있다.
특히 ‘온라인 이력 지우기’, ‘인터넷 평판 관리’, ‘프로필 세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업체들은
디지털 장의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두 서비스는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일 수 있어도,
철학적 관점, 고객 유형, 서비스의 윤리성과 목적에서 명백히 다르다.
디지털 장의사는 죽음을 전제로 한 정리 전문가다.
그들이 다루는 대상은 고인의 유산이며,
그 과정은 유족의 심리적 회복과 법적 보호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반면, 프로필 세탁 서비스는 대부분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이미지 조작’ 목적이 강하다.
둘은 결코 같은 범주로 분류될 수 없다.
2. 프로필 세탁 서비스, 목적과 방식이 무엇이 다른가?
프로필 세탁이란, 인터넷상에 남겨진 자신의 부정적 평판·기록·이미지를 지우거나 덮기 위해
검색 엔진 최적화 기법(SEO), 플랫폼 신고 시스템,
신규 정보 생성 등을 활용하는 방식의 서비스다.
예를 들어, 과거에 올렸던 커뮤니티 게시글, 문제시된 블로그 포스팅,
이름이 언급된 비판 기사나 댓글 등을 인터넷에서 보이지 않게 만들기 위한 작업이다.
이들은 대체로 기술적 접근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 삭제가 불가능할 경우, 긍정적인 콘텐츠를 대량으로 생성해 기존 정보를 밀어내는 ‘덮어쓰기 전략’,
또는 가짜 이름이나 닉네임으로 동일인 검색 결과를 분산시키는 혼란 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는 마치 ‘과거의 기록을 수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현실의 정보를 왜곡하거나 은폐하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러한 방식에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다.
그들은 기록을 없애는 대신, 정리하고, 선택하고, 남겨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일부 디지털 장의사 업체는 고객이 “평판 때문에 흔적을 지워달라”는 요청을 해도
고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닌 이상 삭제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는 이 직업이 단순히 고객의 요청을 기계적으로 수행하지 않고,
기록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인간적인 존중을 함께 고려하는 정리자로 기능하고 있다는 증거다.
3. 두 서비스의 본질적 차이: ‘기억을 조작하느냐, 정리하느냐’
디지털 장의사와 프로필 세탁 서비스는 외형적으로는 유사한 업무처럼 보인다.
모두 디지털 공간에서 무언가를 ‘없애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방향성과 철학은 전혀 다르다.
프로필 세탁은 “잊히게 만들기 위해” 삭제하고,
디지털 장의사는 “기억을 제대로 남기기 위해” 정리한다.
디지털 장의사는 업무를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질문한다.
“이 기록은 왜 지우고 싶으신가요?”,
“누군가 이 기록을 다시 보게 될 때, 어떤 감정이 남길 바라시나요?”
반면, 프로필 세탁 서비스는 기술적 가능 여부와 비용 계산을 먼저 한다.
즉, 이들의 목적은 ‘인간’을 중심에 두느냐, ‘결과’를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디지털 장의사는 삭제가 아닌 ‘정리’를 수행한다.
기억을 덮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기록은 보존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유족 또는 당사자와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정당하게 처리한다.
법적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외부 자문을 받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민감한 기록은 잠시 보관 후 삭제하는 선택지를 제시한다.
프로필 세탁은 대부분 즉각적인 이미지 개선을 목표로 하지만,
디지털 장의사는 장기적인 기억 관리, 정서 회복, 사회적 존중을 목적으로 한다.
결국 이 둘의 차이는 ‘기억을 지우는가’, ‘기억을 책임지는가’의 차이다.
4. 디지털 장의사와 프로필 세탁은 다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디지털 공간에서 흔적을 지우는 일은 기술적으로는 유사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목적과 철학은 전혀 다르다.
프로필 세탁은 ‘보이지 않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디지털 장의사는 ‘기억을 존중하며 정리하는 것’을 지향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실제 업무 방식, 고객 응대 태도,
무엇보다 기록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과거를 지우고 싶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 기록이 부끄럽거나, 불필요하게 나를 설명하거나,
지금의 나와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삭제가 아니라,
그 기록이 왜 남았고, 지금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디지털 장의사는 바로 그 기회를 만들어주는 존재다.
기록은 기술적으로 삭제할 수 있지만,
기억은 감정 속에 남는다.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은 기록과 기억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누군가가 흔적을 정리하려는 그 순간,
후회하지 않도록 ‘지워도 되는 기록’과 ‘남겨야 할 기록’을 구분해주는 것이다.
프로필 세탁이 당장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기술이라면,
디지털 장의사는 긴 시간에 걸쳐 사람의 삶을 정리해주는 조력자다.
죽음 이후의 흔적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생전 정리 역시
이 철학 아래에서만 비로소 ‘정당한 정리’가 된다.
앞으로 디지털 흔적이 더 많아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자주 지우고 싶어질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 흔적은 정말 지워야 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가장 진지하게 귀 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마지막 정리자, 기억을 책임지는 사람일 것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그런 직업이다.
그들과 프로필 세탁 서비스를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직업에는 기억을 존중하고 감정을 배려하려는 윤리의식이 함께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