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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장의사

디지털 장의사 시선으로 본 디지털 추모 문화의 변화와 과제

mystory-202506 2025. 7. 3. 21:36

1. “계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 디지털 추모의 시대가 오다

과거의 추모는 사진 한 장, 제사상 하나, 혹은 묵묵히 고인을 떠올리는 침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SNS 타임라인 속에서,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유튜브 영상 댓글에서,
죽은 이의 이름은 여전히 사람들의 말 속에 등장하고,
그 흔적은 우리가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 남겨진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추모 문화의 출발점이다.

 

디지털 장의사로 일하며 내가 가장 자주 듣는 말은
“계정은 없애고 싶지 않아요. 그냥, 그대로 놔두고 싶어요.”다.
계정을 삭제하지 않고 기념 계정으로 남기거나,
디지털 공간 어딘가에 고인의 흔적을 보존하려는 요청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은, 이제 사람들이 죽음과 이별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10~30대 사이에서는 죽음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추모를 위한 디지털 공간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페이스북의 ‘기념 계정’ 기능, 인스타그램의 계정 보존 요청,
유튜브의 댓글 정리와 채널 보관 등은 이러한 흐름에 플랫폼이 반응하고 있다는 단적인 예다.

디지털 장의사는 과거엔 삭제를 의뢰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기억을 남기는 방법’을 함께 설계하는 사람으로 진화하고 있다.
디지털 추모 문화는, 이제 단순한 감정의 표현을 넘어서
삶의 마지막 흔적을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남길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와 추모 문화

 

2. 장의사의 손끝에서 이뤄지는 ‘기억의 설계’

고인의 기록을 정리하러 갔다가, 삭제보다 보관 요청을 받는 경우는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예전에는 유족들이 “전부 지워주세요”라는 요청을 했다면,
요즘은 “이건 남기고, 이건 가족들만 볼 수 있게 보관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한 요청은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이
단순한 정리에서 기억 관리자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고인의 생전 SNS 기록을 날짜별로 정리하고,
중요한 사진과 메시지를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구성해
‘디지털 메모리북’을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들어온다.
이는 단순히 사진첩을 넘겨받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온라인 발자취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가족들이 추모의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특히 기술적으로는 삭제보다 보관이 더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삭제는 한 번의 명령으로 끝나지만,
보관은 안전하게, 사적인 공간에, 정서적으로 배려된 형태로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단순히 백업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누가 볼 것인가”, “언제 열람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고인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가”를
모두 고려해 ‘디지털 기억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설계는 기술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 기억, 가족 간의 온도 차이를 읽고,
그 감정을 얽지 않게 정리해주는 감정적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요즘 디지털 장의사 업체 중 일부는
추모 콘텐츠 설계 전담팀, 정서 상담 인력을 내부적으로 함께 운영하기도 한다.

3. 디지털 추모 문화의 윤리, 기술, 제도는 어디까지 왔는가?

디지털 추모 문화가 널리 퍼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죽음을 두려움과 침묵의 대상이 아닌,
기억과 나눔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확산 속도에 비해 사회적 제도와 기술,
윤리적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예를 들어, 고인의 계정을 기념 계정으로 전환하려면,
플랫폼마다 요구하는 서류가 다르고,
일부 플랫폼은 사망 사실 확인에도 수 주가 걸린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 절차를 대신 진행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부딪히는 벽은
‘고인의 생전 동의 없음’이다.

생전 계정 처리 방식에 대한 의사 표현이 없으면,
플랫폼은 유족의 요청을 거부하거나 제한적인 접근만 허용한다.
이는 정서적으로는 유족을 도와야 하지만,
법적으로는 개인정보보호법과 충돌하는 구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추모 문화가 진정한 사회적 제도로 확립되려면,
생전 동의 기반의 ‘디지털 유언장’ 시스템 정착이 필수
적이다.

또한, 지나친 콘텐츠 미화나, 고인을 둘러싼 왜곡된 이미지가
디지털 추모의 이름으로 확산되는 경우도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 과정에서
무분별한 콘텐츠 확산을 차단하거나, 고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삭제도 병행해야 한다.
따라서 추모와 보호, 기억과 삭제 사이에서
'정서적·윤리적 판단이 공존하는 디지털 장의사만의 ‘기준점’이 필요해지고 있다.

4. 디지털 추모, 그 조용한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디지털 추모는 단지 플랫폼의 기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고인의 흔적을 어떻게 남길 것인지,
어떤 감정으로 기억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공간을 누구와 나눌 것인지에 대한 사람 중심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디지털 장의사는 그 선택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삭제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남기고 싶은 기록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건네는 사람이며,
“누가 함께 기억하길 바라시나요?”라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다.

디지털 추모 문화가 정착하려면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그 사람이 느끼는 슬픔과 공백, 그리움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멋진 기능도 고인을 온전히 기억하게 만들 수 없다.
추모는 감정의 공유이며, 기억의 공동 소유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장의사가 추모 문화를 정리할 때,
그 손끝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닌 감정이 닿아 있다.
어떤 사진은 남기고, 어떤 글은 지우고,
어떤 대화는 묻어두며, 어떤 콘텐츠는
‘이제는 보지 않아도 괜찮아요’라는 말과 함께 정리된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디지털 공간에서
더 많은 추모를 하게 될 것이다.
죽은 이를 위해, 남겨진 이를 위해,
그리고 때로는 나 자신을 위해.
그때마다 필요한 건
삭제가 아닌 정리,
침묵이 아닌 이야기,
기술이 아닌 사람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그 모든 것을 잇는 조용하지만 꼭 필요한 연결자다.
그들이 만들어주는 디지털 추모의 공간은,
단지 흔적을 모아두는 곳이 아니라,
고인을 품위 있게 기억하는 우리의 새로운 방식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