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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장의사

디지털 장의사가 수행하는 암호화폐 상속 절차

mystory-202506 2025. 7. 11. 18:23

 

1. 누가 그 지갑을 열 수 있는가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산은 남는다. 그런데 그것이 부동산도, 예금도 아닌 암호화폐일 경우,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고인의 지갑 주소를 알고 있다 한들, 그에 대응하는 개인 키가 없다면 어떤 거래도 불가능하다. 고인이 비밀번호를 남기지 않았고, 복구 시드도 메모해두지 않았다면, 그 자산은 '존재하지만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겨진다. 숫자와 코드로 이루어진 그 잔액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유령이 된다.

 

이처럼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암호화폐 자산은, 상속이라는 개념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 자산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공백을 다루기 위해 등장한 존재가 바로 디지털 장의사다. 이들은 고인의 디지털 흔적을 추적하고, 살아 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자산을 관리했는지를 역추적하면서 상속 가능성을 하나씩 검토해 나간다. 이 직업은 더 이상 '계정 삭제 대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죽은 이의 코드 속 자산을 조용히 꺼내는 일이다.

 

2. 상속이 아닌 복구의 기술

암호화폐를 상속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복구’라는 단어가 더 자주 쓰인다. 상속의 전제는 자산을 합법적으로 넘길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 이더리움, 그리고 수많은 지갑에 들어 있는 토큰들은 대부분 고인의 뇌 속에 잠들어 있던 정보와 함께 사라진다. 그렇기에 디지털 장의사가 처음 하는 일은 ‘그 흔적이 어디 남아 있는지’를 찾는 것이다.

고인의 컴퓨터, 스마트폰, 노트 앱, 이메일, 심지어 오래된 종이 메모까지도 조사 대상이 된다. 이 작업은 단순한 기술 행위가 아니다.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에, 유족과의 정서적 조율, 신뢰 형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때로는 지갑 주소는 알지만 복구 키가 없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키는 있는데 어느 지갑에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트랜잭션 기록을 뒤져 지갑 유형을 유추하거나, 시드 구문의 일부를 기반으로 자동화된 키 조합 도구를 통해 매칭을 시도하기도 한다.

디지털 장의사의 암호화폐 상속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법적 윤리적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 발짝만 삐끗하면 개인 정보 보호법 위반, 무단 침해, 자산 도용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찾는 기술’ 이전에 ‘넘지 않아야 할 선’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3. 장의사의 일은 언제나 회색지대 위에서 이뤄진다

법은 여전히 암호화폐를 완전히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누구의 소유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그 자산은 국가로 환수되거나 유실 자산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은 은닉이 가능하고, 실물 기반이 없기 때문에 기존 법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고인의 자산임을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고, 지갑이 누구 것인지 증명하는 방식조차 불명확하다. 이 때문에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은 종종 ‘불확실한 틈을 해석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법원이 요구하는 서류를 준비하고, 가능하다면 고인의 유언장을 확인하며, 가족 간 상속 권리 구도를 따져낸다. 동시에 암호화폐 거래소와 접촉하여, 자산 이전이 가능한 경우에는 접근을 시도한다. 하지만 가장 큰 장벽은 언제나 ‘개인 키’다. 이 정보는 복구가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기술적 조치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디지털 장의사는 어느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자산은 건드릴 수 없는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접근이 가능한가.

 

이러한 판단은 정답이 없다. 법률, 기술, 윤리, 그리고 감정이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일은 정형화될 수 없고, 언제나 사례 기반의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4. 준비하지 않는 자산은 결국 유산이 되지 못한다

암호화폐는 철저히 개인적인 자산이다. 그 어떤 국가 기관도, 금융회사도, 그것을 대신 관리하거나 복구해주지 않는다. 고인의 머릿속에만 있던 정보는, 그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생전에 준비하는 것’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점점 ‘사후 정리자’가 아니라 ‘생전 설계자’로 역할을 넓혀가고 있다. 일부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사전 컨설팅을 통해, 어떤 지갑을 사용하고 있고, 복구 시드는 어디에 보관되어 있으며, 사망 시 누가 열람할 수 있도록 할지에 대한 플랜을 짜주기도 한다.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법률적 문서까지 포함된 이 설계는 그 자체로 디지털 유산을 진짜 유산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사회 역시 이 변화에 맞춰야 한다. 국가는 관련 법을 명확히 해야 하고, 거래소는 사망자 계정 처리 기준을 공개해야 하며, 개인은 자신의 자산이 누군가에게 안전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의 중심에서, 디지털 장의사는 묵묵히 가장 민감하고 복잡한 자산을 다루고 있다.